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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처음 시작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등학생시절 그보다 더 어린시절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엄마, 아빠는 나에게 공부하라는 강요보다는 늘 할수있다라는 말과 조금 못하면 어때라는 말로 늘 긍정적인 표현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서야 내가 크고 부모가되어 자식을 키우게되면서 그 말의 의미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느낄수 있었는데 아마도 우리 부모는 자식에게 강요보다는 스스로 할수있다라는 마음과 너무 각박하게 살지 않기를 어쩌면 원하지 않았으락 라는 생각을 해볼수 있엇던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부모가 된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난 서투른 초보부모 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잘할수 없지만 잘하고 싶은것이 모든 초보맘들의 바램인것 처럼 나역시도 어떻게 하면 우리아이를 잘 키우고 잘 성장시킬수가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지난 일과 육아를 병행하게 되는 워킹맘들의 입장은 정말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만큼의 육아가 얼마나 힘들지 않나 모른다고 생각한다.
처음 결혼을 하고 한동안 자녀계획이 없었지만 결혼 1년차가 지나고 2년차가 되었을 무렵 임신테스트 결과를 했는데 임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걱정또한 많았던것 같다.
과연 내가 내 뱃속에 있는 아이를 잘 키울수가 있을까. 나도아직 어린데라는 생각이 그당시 가장많이 들었던 생각이였다고 생각한다.
혼자알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큰 소식이였기에 서둘러 직장에 있는신랑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신랑역시 깜짝 놀라고 많이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후에 친정엄마와 시엄마한테까지 이야기를 하고 머지않아 온가족이 나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느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임신을 하게되고 임산부의 길로 접어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배가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하고 맛있게 먹고 좋아하던 음식들이 어느 순간부터 먹기 싫어지는것을 느끼게 되면서 이것이 바로 입덧이구나라는것을 몸의 변화를 통하여 알게 되었고 그후로는 많은 잠과 잘 알수없는 우울함과 걱정때문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배가 많이 나온편은 아니여서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녀도 임산부인것을 사람들은 알아보지를 못해서 자리를 양보 받아보거나 그흔한 임산부석에 앉아 보지도 못했던것 같다. 가끔 자리가 비어잇어 안고 싶다가도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그냥 불편하고 설령 앉아 있다가 노인분들이 다가오게되면 자리를 양보해줘야만 할것같은 걱정으로 인하여 임산부석 보다는 일반석에 앉는 경우가 더욱 많았던것 같다.
8개월차가 되었을때쯤 배가 몰라보게 부풀어 오르는것 처럼 그전과는 다르게 배가 남산처럼 볼록 나오게 되었다.
배가나오니 걸음걸이뿐 아니라 그당시 부터는 모든것이 귀찮아 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아침에 출근하는 신랑의 얼굴을 못보는 날이 더 많아 지게 되었던것 같고 밤에 자다가 갑작스럽게 배가 고프거나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기도 하였고 이러한 증상을 인터넷과 책을 통하여 알아보니 누구나 흔히 겪는 임신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했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난 마음이 초조해지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던것 같다. 맘카페에 들어가서 임신개월차마다 모여있는 공간에 들어가 정보를 나누고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도 하면서 당시 많은 공감과 위로 그리고 자신감을 얻을수 있었다.
그렇게 보냈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는것을 보면 어쩜 나역시도 본능적으로 새로운 출산을 앞둔 마당에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고 알고 싶어서 행동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정일이2주정도 남았을때 산부인과 원장님과 출산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상의를 하기로 했다. 산후조리원과 출산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분만과 재왕절개를 두고 고민하였지만 나의 선택은 자연분만 쪽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정 하다하다 안되면 나중에 재왕절개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출산을 하고 느낀것이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재왕절개를 할걸 이라는 생각을 몇번씩 곱씹으면서 되새겼던것 같다.
정말 아이를 낳는다는것은 보통이 아닌일 정말 다시는 하고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일이였으니까. 아이를 낳아본 사람만이 부모의 마음을 알수 있다는 말이 이래서이구나라는 것은 아마도 다른 엄마들도 모두가 배아파 아이를 낳아봤기 때문에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출산예정일이 이틀앞으로 다가왔다 여느날처럼 집에서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고 쉬고 있었다. 출산준비물은 언제라도 양수가 터지게되어 병원에 가게되면 바로 갈수 있도록 다 싸둔 상태였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11시쯤 조용하게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랫배가 이상하더니 뭔가 풍선이 터지듯이 작게 펑하는 소리가 들리는것을 느낀것 같다.
출산을 앞두고는 친정엄마네 집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양수가 터진거 아니냐면서 나보다도 오히려 더욱 무서워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겁이많다. 다른엄마들은 엄마는 원더우먼이야 라는 말처럼 모든지 척척 알아서 해결해주고 억척스러웠던 사람들 자식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엄마들이 적어도 내 친구들 주변에서는 많이 볼수 있었는데 우리엄마는 그런분은 아니였다.
딸이 양수가 터졌는데 척척알아서 안심도 시켜주고 진정시켜주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른것은 내가아닌 엄마였다.
자고있던 신랑을 깨웠더니 일어나자마자 깜짝 놀라면서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아빠역시 딸의 첫 출산이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되었는지 일어나서 조심히 다녀오라면서 날 안스럽게 쳐다보았던것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싸두었던 짐을 가지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까지는 집에서 5분거리여서 금방도착을 했다. 벼우언에 도착하니 자정 12시가 조금 넘은시간이였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이고 동네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7층짜리 건물인 인정병원 이였기 때문에 그시간에도 의료진들은 항상 대기중이였다.
당시 내 담당의사는 병원에서 가장 실력이 좋고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던 병원장님이셨다. 사실 처음 임신을 하고 누구나 다 이런생각을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산부인과에 가게되면 여자선생님한테 진찰을 받고 싶다고 말이다.
나역시도 그랬던 생각을 안해본것은 아니지만 산부인과를 여기저기 알아보던중 여자선생님들도 좋지만 우리가 선택한 병원의 원장선생님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어서 해당병원으로 선택하게 된것이다.
출산을 하고 느낀 거지만 정말 원장님 덕분에 감사하게도 출산을 할수 있었던것 같아서 다시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병원에 도착해서 초음파검사를 하고 출산준비에 들어갔다. 담당 간호사언니한테 물어보니 출산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6~7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한다. 그때까지 병원에서 초초하게 기다려야 하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무서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던것 같다.
입원수속을 끝내고2시간 동안은 그다지 통증이나 아픈것을 모르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가지 걱정이 된것은 내 담당 의사선생님인 원장님이 새벽에는 당직을 안슨다는 것이였다. 출근을 하시더라도 보통 아침에 오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럼 누가 출산을 담당해 주냐고 물어봤더니 그날의 당직선생님이 도와주실거라고 하셨다.
이왕이면 내가 진료받았고 나를 잘알던 분이였으면 좋았을텐데란 생각을 했는데 참 많이 아쉬웠던 부분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병원측에서 원장님환자가 입원했다는 말을 한 덕분에 원장님은 상황을 전해듣고 아침에 일찍 나오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와주시면 마음에 위안과 걱정이 덜될것 같은데 혹시라도 원장님이 오기전에 희랑이(태명)가 나오면 어떻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원장님은 역시나 배테랑이셨다 아이가 나오려면 적어도 몇시간은 더 기다려야 된다는 것을 수많은 출산을 집도했던 경험으로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오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출산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통주사와 가족 분만실로 들어가신랑과 둘이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제 곧 나올것 같은 생각 뱃속에서 희랑이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점점더 무서움이 커졌던것 같다. 아이를 낳을때 대부분의 엄마들은 두가지중에 하나의 고통을 경험한다고 한다.
출산을 허리로 낳는 사람이 있고 배로 낳는사람이 있다는것인데 허리로 낳으면 정말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허리로 희랑이를 출산한 경우라고 할수있다. 평소 170cm 50kg 의 체력을 가지고 있던 내가 희랑이를 임신하고 늘어난 몸무게가 60kg 정도밖에 안되었고 깡은 있지만 마른체격때문에 힘이 없어서인지 힘을 주기가 사실 많이 어려웠던것 같다.
고통이 시작이 되면서 그당시에는 정말 아파서 눈물만 났던것 같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 아침에 원장님이 분만실로 들어오셨다. 내상태를 체크하더니 30분안에 아이를 낳게 해줄테니 참을수 잇냐 잘할수 있냐라면서 진정을 시켜주었다.
그말을 듣고 나에게 남은 시간도 이젠 30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버텨보기로 했다.
임박했나보나 너무 아프고 원장님이 들어오셔서 출산을 하기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간호사언니가 배를 힘껏 누르면서 생전 처음겪어보는 분만을 시작하게 된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험했던 고통들이 몸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기억은 아직도 또렷한것 같다.
그만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임팩트한 순간이 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30분만에 희랑이의 울음소리가 나면서 내 몸속에서 무엇인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던것 같다. 이제 끝났구나.
하염없이 그냥 울음이 나기 시작했던것 같다 출산을 무사히 하게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과 너무 고통스럽고 아픈 이 과정을 끝낼수 있어서 흘린 환희의 눈물이 아니였나 생각한다. 희랑이가 태어난 시간은 09시52분 이였다.
3~4시쯤 부터 통증이 오기시작하면서에 5~6시간 만에 희랑이를 얻을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 시간이면 생각보다 빨리 나온것이란 이야기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랑의 손으로 직접 탯줄을 자르고 아이를 처음으로 내품에 안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짧은 인사만 한채 신생아 보호실로 옮겨졌고 난 병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연분만으로 출산을 했기때문에 난 재왕절개를 했던 사람들보다 쉽고 빠르게 회복해서 다음날부터 조금씩 걷고 움직이고 시작했고 병원안에 있는 산후조리원으로 옮기면서 2주동안 희랑이와 합숙훈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정한 엄마가 되기위해서 모유수유 하는법과 아이를 씻기는 법 그리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내 몸을 돌보는 것까지 그렇게 2주동안 열심히배우고 몸조리를 하고 친정으로 돌아가 두달정도 몸조리를 하면서 그렇게 나의 초보엄마의 육아가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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